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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여년전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명령에 의해 살해된 클레오파트라의 여동생 아르시노에.

14일 더 타임스 등 해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 소속 과학자들은 아르시노에(Princess Arsinöe)의 유골을 발견했으며 법의학적 복원 과정을 통해 그녀의 외모가 아프리카인의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41년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르시노의 두개골은 유럽 백인은 특징은 물론 아프리카인의 특징도 보인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이로써 클레오파트라 또한 혼종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백인인지 또는 북부 아프리카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아르시노에로 추정되는 유골은 터키 에베소의 한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아르시노에와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이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아르시노에 [Arsinoe]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막내딸.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여동생이며 프톨레마이오스 13, 14세의 누이이다. 알렉산드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원주민 군대를 이끌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동맹을 맺은 클레오파트라 7세에 대항해 싸우려 했다.

카이사르는 BC 48년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일족들을 모두 잡아들였으나 아르시노에는 스승인 가니메데스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아킬라스가 이끄는 이집트군에 합류했다. 가니메데스와 아킬라스 간에 불화가 생기자 아르시노에는 아킬라스를 처형했다. 가니메데스는 카이사르 군대와 협상을 벌여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아르시노에를 교환하려 했다. 그러나 로마는 증원군의 도움을 얻어 이집트군을 물리쳤고 아르시노에는 카이사르의 개선 군대의 포로로 로마에 갔다. 이같은 치욕을 당한 아르시노에는 야심만만한 클레오파트라 7세가 자신에게 보복할 것을 두려워해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피신처로 삼았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삼두정치의 일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환심을 얻은 뒤 그를 설득해 결국 BC 41년 아르시노에를 처형하도록 했다.

Posted by 참맛살이